정산에서 공평이란 무엇인가 평등·부담능력·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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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금액을 내는 게 공평인지,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내는 게 공평인지, 받은 만큼만 내는 게 공평인지. 셋은 동시에 성립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고를지 정하기 위한 정리입니다.
공평하게 나누자는 말만큼 합의가 된 것처럼 보이면서 안 된 것도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같은 금액을 내는 것을, 한 사람은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내는 것을, 한 사람은 자기가 받은 만큼만 내는 것을 공평이라 부릅니다. 셋 다 공평을 바라는데 결론이 안 맞는 건 성격 문제도 손익 문제도 아닙니다. 같은 단어가 세 가지 다른 원리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같은 금액을 내는 게 공평이라는 생각
가장 소박하고 가장 튼튼한 형태입니다. 전원이 같은 금액을 냅니다. 계산이 필요 없고 아무도 특별 취급을 받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이 형태가 강한 이유는 공평의 근거를 사람이 아니라 절차에 두기 때문입니다. 누가 얼마를 버는지, 누가 뭘 먹었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참석한 사람은 같은 금액을 낸다는 한 줄로 굴러갑니다. 사이가 깊지 않은 모임이나 초면이 섞인 자리에서 이게 선택되는 건 상대 사정을 몰라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점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정을 묻지 않는 설계라서 사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불공평해집니다. 수입이 3분의 1인 사람에게 같은 5만 원은 같은 무게가 아닙니다.
낼 수 있는 사람이 더 내는 게 공평이라는 생각
두 번째는 금액이 아니라 부담의 무게를 맞추려는 생각입니다.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가 본인에게 갖는 의미를 같게 하려 합니다.
커플이나 가족처럼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자주 채택됩니다. 소득 차이가 있는데 같은 금액을 내면 한쪽 생활만 빠듯해지고, 그 빠듯함은 결국 둘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미리 기울여 두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입니다. 구체적인 계산은 소득 차이가 있는 커플의 분담에서 다뤘습니다.
다만 이건 상대의 소득을 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친구 그룹에서 이걸 꺼내면 전원이 연봉을 밝히는 이야기로 번지고, 대개 실행되지 않습니다. 이 형태를 쓸 수 있는 건 관계의 깊이가 이미 일정 수준을 넘은 경우뿐입니다.
받은 만큼만 내는 게 공평이라는 생각
세 번째는 지불과 수익을 일치시키려는 생각입니다. 먹은 만큼, 쓴 만큼, 참여한 만큼 냅니다. 안 마시는 사람이 무제한 음료값을 안 내는 것도, 다이빙에 안 가는 사람이 투어비를 안 내는 것도 이 원리에 서 있습니다.
논리로는 가장 반박하기 어려운 형태입니다. 누구도 남의 소비를 부담하지 않으니 불만이 나올 출구가 없습니다. 실제로 금액이 큰 항목에서는 이 원리가 채택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잘게 쪼갤수록 계산과 기록이 늘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누가 치킨을 몇 조각 먹었는지까지 세기 시작하면 공평의 정밀도를 올리려고 전원의 시간을 쓰게 됩니다. 공평을 추구하는 비용이 공평에서 얻는 이익을 넘는 지점이 반드시 어딘가에 있습니다.
셋은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여기가 본론입니다. 세 가지 공평은 같은 계산서 위에서 동시에 성립하지 않습니다.
같은 금액을 내면 소득 차이가 무시됩니다. 소득으로 기울이면 소비량 차이가 무시됩니다. 소비량으로 엄격히 나누면 소득 차이도, 자리를 함께한 가치도 무시됩니다. 어느 하나를 세우면 나머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희생됩니다.
그래서 논의가 끝나지 않습니다. 전원이 옳은 말을 하고 있고, 게다가 서로 양립하지 않습니다. 이 구조를 못 본 채 이야기하면 왜 이해해 주지 않느냐는 감정 문제로 바뀌어 갑니다.
정할 것은 어느 것을 택할지뿐입니다
우회로는 없습니다. 셋 중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를 금액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고릅니다. 그것뿐입니다.
현실의 그룹은 항목마다 나눠 씁니다. 숙박비는 평등, 액티비티는 수익, 동거 생활비는 부담 능력. 한 여행 안에 세 원리가 섞여 있어도 항목마다 일관되어 있으면 아무도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정산 3가지 방식이 셋인 데는 이유가 있고, 그건 이 세 가지 공평에 각각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을 고르든 안 고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입니다. 정하지 않은 채 진행하면 그 자리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원리가 채택됩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이 조용히 차액을 부담합니다. 소액을 청구하기 어려운 구조도 뿌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공평은 정답의 이름이 아닙니다. 세 원리 중 무엇을 이 장면에서 쓸지에 대한 합의의 이름입니다. 합의인 이상 미리 정해 둘 수 있고, 한 번 정하면 매번 논의할 필요도 없어집니다.